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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9-10 11:45
하비 콕스, 『종교의 미래-독후감입니다.
 글쓴이 : salt
조회 : 416  
-하비 콕스, 『종교의 미래: 예수의 시대애서 미래의 종교를 보다-

미래 세계가 지금보다 더 나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 할수 있을까? 또한 지금의 한국교회의 위치에서 미래의 그리스도의 희망이 있는가? 교회 안팎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같이 묻는다. 그러나 희망적인 답변보다는 현제의 기독교 위치는 희망보다는 이구동성으로  교회의 자각과 성토를 말하고 있다. 이미 유럽과 서방의 교회침체 이후 한국교회의 지역교회 및 농어촌 교회는 여러 이유의 위기는 심각한 상태라고 보아야 한다. 교회의 대형화는 쇼핑타운 시스템처럼 편리화 속에 집단이기의 교회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부목사 수백명이 한교회에 정착하는 기업교회의 목회자의 직업화는 심각한 신앙의 변질로 이어지고있다. 교회의 미래가 적어도 한국에서는 회의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책의 저자 하비콕스는 교회의 미래를 지난날 이미 지나온 기독교의 역사속에 나타난 개혁교회 이전과 이후의 과정에서 기독교의 미래를 희망의 보고있다. 그런의미에서 이책의 내용에 매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촌으로 이주 하면서 더욱 확연해지고 있는 실정에서 하비콕스의 신학적 메시지는 한국교회에도 해당이 되길 원한다. 절망을 느낄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 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초월적 신비한 능력의 시대를 보고 있는 것 이다. 여기서 신비는 아인쉬타인의 경험을 통한 신비에 대한 근본적경험인 자연 세계의 미묘함과 마주침에 대한 네러티브를 끌어왔다. 또한 그 신비는  다른 곳에서도 경험 내지 다른 곳에도 다른사람도 마찬가지로 발견한다. 또한 타인과 만남을 통하여 자신을 반성하는 데서도 발견한다. 그러나 신비는 아직도 또 다른 하나의 장소에서 만나야 하는  즉 '타자'를 가지고 있다.

우주와 자연만이 신비에로 개방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나고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 실존철학자요, 작가인 사르트르(1905~1980)가 치과병원의 대기실에 홀로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의 장면속에 발견한 타인을 향한 관찰로서. (그는 지루해하고 약간 불안한 심경에 빠져서 벽에 걸려 있는 싸구려 그림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너덜너덜한 잡지들, 그리고 얼룩진 낡은 깔개를 힐끗 바라본다. 그때 상황이 바뀐다. 문 이 활짝 열리면서 또 다른 환자가 한 사람 들어선다. 그는 건너편에 앉는 다. 잠깐 동안 그들은 서로 모른 척하려 한다. 그러다가 그들은 몰래 살짝 상대편을 힐끗 본다. 그러나 마침내는 그들의 눈이 마주친다.) 사르트르는 말한다. 이제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결투가 된다고, 한동안 그들은 노려본 다. 그러나 그 다음에 한쪽이 결국에 시선을 딴 데로 돌린다. 사르트르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내가 너의 세계에서 하나의 객체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네가 나의 세계에서 하나의 객체로서 작용이 되는 대상 이라는 사실이다.

신비로서 타인을 탐구하며 일생을 보낸 유대인 철학자 레비나스 는 인간이 어떻게 서로 조우하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 하면서 평생에 걸친 매혹의 마력을 발전시켰다. 그의 접근 방법의 근본원리 는 '지혜의 사랑' 이라고 하는 철학의 전통을 사랑의 지혜로 역전 시키는 것이다. 타인과 나의 조우는 내가 다른 곳에도 발견하지 못하는 실재의 한 차원을 열어 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신앙은 신비에 직면하여 느끼는 경외심과 더블어 시작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임재는 장소에 있어 편재 하시며 사람에게 있어 편애하신다. 출애굽기는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하나님의 모습(능력)을 보이시고 이집트 노예에서 해방시켜주셨다. 또한 그들 속에 있는 과부와 고아에 대한 우선적 편견과 가난한자에 억울함을 먼저 풀어주시고 망명자들을 회복시켜 주시기로 약속하신다.

근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의무적인 신조체계는 이제 점점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근본주의 는 때대로 믿음을 지키기위해 폭력을 선호하는 성향을 말하고있다. 다수의 이단 정죄 속 에 과연 신학적으로 정의 내린 기독교 공의회가 신으로부터 인간을 파멸 할수있는 신에 권한을 대행 할 수 있는가? 는 의문이다. 지금도 칼빈근본 주의는 개혁주의 사상은 칼빈 에 의하여 완성되었고 칼빈근본 주의야 말로 바른믿음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실상은 칼빈도와 혹은 칼빈의 이중예정론 교리를 진리로 믿고있는 목회자와 신학적 학술 세미나에서 나타난 그들에 신학적 진리라는 것이 결국은 히브리사상과 헬라철학의 융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칼빈 근본주의에서 머물러 있다.

칼빈의 이중예정론을 완벽한 하나님의 구원에 방법으로 종속 시켜야하는 칼빈주의는 현실목회에서 목회자에게 딜레마로 작용하는것이 실제이다. 그러면, 과연 한국의 감리교와 성결교,침례교, 순복음등은 초대교회가 가지고있던 순수한 성령의 역사에 나타난 교회가 교회되는 자유에 좀더 가까이 있는가는 의심에 여지로 바라볼수 밖에 없다. 하비콕스가 의문하는  종교의문제 기독교 종파에대한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하비 콕스는 말한다. 장로교도들, 감리교도들, 침례교도들, 퀘이커 교도들, 그리고 가톨릭교 도들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이러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종교는 어떠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말한다. 

근본주의 의 치명적 성령회방의 역사는  성공 신화, 개인 구원, 인간 승리의 신화에 매달려 왔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완전함과 기독교의 부흥을 위하여 무슬림극단주의와 다른 의회적 종교재판에 의하여 종교적 목적에 따라 처형되거나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조를 만들어 가는 엘리트적 목적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하비는 초대교회의 민중 사회에는 가난과 문맹이 예수를 열광했고 그들은 신앙적 목마름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교리와 신조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공동체 안 다른 성원들을 배려하고 함께 나누고 고민하여야 할 공동의 관심사와 어려움을 풀어가는 데 걸림돌(또 하나의 율법)이 되고 있다. 자유로운 신앙의 열정 속에 초대교회는 영적인 신비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적 신비로 가득한 교회가 과연 오늘날 존재 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이미 로마교에 의해 영적신비는 파괴되었고, 로만교회의 권위에 긍휼과 사랑으로 역동하는 성령의 조명은 꺼져있다. 초기 개혁교회는 수세기를 흘러 변화여 다시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성토 할만 큼, 길가에 버려진 모퉁이 돌로 세워져야할 교회는 앞서 말한 것처럼 종교집단의 우두머리와 상석 시스템에 부합되어야 하는 로만교회에 모습을 상기시키는 것이 현제의 개신교의 모습이다. 건물과 사람의 우두머리가 민중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는 새 하늘을 설교 했지만 새 땅과 새 하늘은 성경 속 신화에 머믈게 한것이 바로 헬레니즘 문화 철학에 의하여 탄생한 어거스틴 으로부터, 칼빈이다.

 하비 콕스가 제기하는 문제와 해법은 영적인 자유와 사랑의 신비적 경험은 성령의 역사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해법인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제한될수 없지만,궁중을 벗어난, 소외된 소수의 사람사이에부터 성령의 바람이 휘몰아 쳤던 것이다. 바로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성령의 역사는 120문도에게 해방의 감격을 주었다 .다국어의 언어로 서로를 소통할수 있는 방언,통역의 역사가 배움에서 소외된 소수의 예수의 추종자들에게 나타난것이다. 예수님의 예언은 신화가 아니라 실제하는 히스토리가 되었다.하비 콕스는 이 책에서 faith(신앙)와 belief(믿음)를 엄밀하게 구분하고 이를 기독교 역사와 신자들의 행태를 설명하는 데 적용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역사는 신조의 역사가 아니며,  성령의 능력의 영적은사(신앙)에 나타난 사람들의 이야기 라고도 말한다. 바울도,이그나티우스도 ,이레뉘스도,오순절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사실 바울 자신도 성령의 체험을 통하여 사도로서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까지 제도화된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성령이 주관하는 교회밖의 신비적 과정을 정의 할수없는 교회의 고민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문에서 나타난 콘스탄티누스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교회의 모습이 유전되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사실 그것이 교회의 문제이다. 한국교회는 대통령이 불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조찬기도회는 사이비 교주의 구국기도회 의 뿌리를 두고있다. 순순한 기독교적 목적에 동떨이진 기도회 라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하비 콕스는 성령이 니케아의 왕궁에 떠돌고 있는지 어쨌는지는 나는 아는 바 없다고 말하며,그러나 콘스탄티누스가 거기에 떠돌고 있었다는 것과 회의의 모든 진행 절차에 가장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그였다는것은 기정 사실이다. 역사적인 니케아 공회는 하나의  교회와 제국을 통일 시키려는 노력이었지만 비참하게 실패로 판명되었다.

저자 하비콕스는 신앙과 믿음을 동일한 표현으로 보고있는 사실에 대하여 신앙과 사랑(성령)은 믿음보다 더근원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타인은 지옥이다. 라는 실존적인 물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인은 타인을 사랑함으로서성령의 능력의 신비로움을 체험 할수 있는 것이다.사랑이란 말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타인 속에 타인인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면 존재라는 의미는 사라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이란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말씀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믿음에 시대라고 할수 교회의 역사는 신조라는 근본주의에 나타난 필요에 의한 불행이 있었다.

하비 콕스는 인간 존재로서 우리는 자연과 역사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두 가지 실존 양태를 융합한다. 우리는 모두 신체 안에 거주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 리의 신체를 허리에 두른 천 조각에서부터 프라다에 이르는 갖가지 의상으로 치장한다. 우리는 모두 말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벵골 어로부터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어에 이르기까지 몇백 가지 다른 언어로 말한다. 마찬가지 로 우리는 모두 “신앙을 하는"(faith-ing) 동물들이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우 리의 삶에 일관성과 목적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은 행운이거나 우리의 선조들이거나 우리의 돈, 두뇌, 또는 교제관계일 수 있다. 그것은 위에 열거한 것 중 아무것도 신뢰할 수 없다는 하나의 확신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것은 해마다 또는 시간마다 변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신앙하 는 사람들” 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수히 많은 상이한 대상들에게 우리의 신앙하기를 강요한다.

이질적인 종교속에 하비 콕스는  이보다 더 처참한 것은 역사적으로 대조적인 색깔들이 끝없이 이어진 십자군 전쟁들, 지하드(성전), 종교재판들, 그리고 종교 박해들에 연료를 공 급해주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사람들은 기꺼이 “신앙을 위하여 죽을 뿐 만 아니라 또한 기꺼이 신앙을 위하여 죽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우리가 첨가해야 할 것은, 종교인들만이 무신론자들과 이단자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무신론자들 또한 종교인들을 신앙 때문에 기꺼이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추악한 역사이다. 그런데 다양한 종교적 전통 가 운데서 그리스도교가 가장 잔학한 기록들의 하나를 쌓았다. 그렇지만 그리 스도인들이 다른 종교들인들 가운데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지역에는 특히,그 핵심 신앙을 회복하려고 벌이는 그리스도교의 현행 운동이 좀 더 공손하며 협력적이고 정다운 태도를 자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증거가 있다.

그리스도교는 유대인들의 한 느슨한 집단으로 시작했고 곧 이방인들이 여기에 가담했다. 그들은 예수의 필생의 사업을 계속함으로써 예수를 따라 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필생 사업은 평화와 정의가 편만한 하나님의 다스리심, 즉 “하느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 도 실현되게 해주시기를 간구하라고 그가 가르쳐준 기도 안에 가장 잘 기 술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는 힌두나 불교도나 무슬림을 만난 적이 없다. 그 는 다른 종교들의 신봉자들과 더불어 사는 방법에 대한 명백한 선례를 남 기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신앙 재생 물결이 이러한 상이한 종교의 길들 가운데서 견지해야 할 관계를 모색하는 데 무슨 의미가 있느 냐는 물음은 어떤 독창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새 세기가 시작되 면서 우리는 기이한 역설에 직면한다. 지금은 가장 좋은 때이며 가장 나쁜 때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이전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기관과 회의와 세미나가 종교 간의 대화에 바쳐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한 종교들 사이에, 그리고 종교들 내부에서 무시무시한 적대감을 가지고 살아 가고 있다.

이러한 적대적 관계는 근본주의한 폭력적인 행사에 가까운 형태로 이어진다.개신교 열성종교인은 절간의 불상을 파괴하는 행위까지 신문에 날정도로 우리나라 개신교 종교인의종교적 사상은 완벽하게 용감하다. 어찌 보면 그리할수 박에없는 종교적 가르침에 순종 한것이지만,상식을 파괴하는 종교적 문제는 오늘날 우리주변에 범람하고 있다. 사실상 기독교내부의 치열한 냉소적 관계는 개혁의 선두에 있던,칼빈주의 와 웨슬레주의 사이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어있음에도,암묵적으로 타종교에 대한 칼은 유전되어있다.그런면에서 불교의 관용은 크리스마스 행사를 같이 한다는 것이다. 물론 불교의 원리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불교에서 부처를  모시는것은 대중이고 승려는 부처를 뛰어넘는 부처가 되는 과정적 수행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행사 또한 수행 이다.

그러한 부분에 있어 다른 종교를 가진 타인에 대하여 성령님의 역사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실 것이다. 그것이 종교적, 정치적인 희생양 이 되신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신앙인 사랑의 성령의 역사에 힘입어 사는 그리스도인  이라 말할 것이다. 하비 콕스는 지금의 성서에 대한 완벽함에 도전한다. 도마복음을 언급하기도 하며 성서의 원본이 없는점을 들고 번역의 문제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신학과 종교적 문제에 대하여 자유주의적 개방적 사고에서 얼마든지 논지기 될수있다.

그러나 성서의 오류 번역,사본,또한 새로운 발견의 복음서에 관하여 신학자로서 관심연구는 당연하지만 성령의 역사안에서 보편화 과정에있어,와 민중에 이르기까지 아우르는 면에서,하비 콕스는, 신학적 엘리트코스를 답습하는 하는것이다. 자신 또한 그러한 주장을 실제화 하려는 노력은 또다른 오류에 봉착 할것이다.성령의 역사는 전적인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의 현제 진행 형이다. 성령의 역사 안에서 경험하고 체험 할 수 있는 사실은  자신 많이 알수있다. 고린도전서 13:1-3 말씀처럼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타인을 바라보는 관찰과 능력을 말하고있다. 그능력은 성령의 나타나심이 아니고는 할수 없는 것이다. 변화(비젼) 있어서 인간은 어느시기가 되면 모든 것이 고착화된다. 성격,말 습관,생각,행동이 이미 완전히 몸과 생각과 습관이 자신에것이 되는 것이다.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모든게 자신에 관습 행동 습관에 의하여 그모습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이런 고착화된 죄성과 근본적 죄의 속성 속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날마다 새롭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삶이고 삶은 곧 은사 인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궁중 속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아무도 찾아주지 않고 누구도 도아줄수 없는 저 사마리아 땅끝( 온천하,만민,모든 족속)의 기독교인 이라는 이름이 없는 곳에서 성령의 역사는 우리기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신비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있지 않는가?  물론 저자 하비 콕스는 변화를 이야기할 때 근본주의에 사라짐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함으로써 이 책을 시작하였다. 사회의 변화를 종교의 수용에 두고 있다. 예로 여성에 대하여 몇천년 금기되었던 쿠란의 주석서를 발행하고 있으며 회당을 인도하며 불교도 피정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종파들에는 이제 여성 목사들, 여성 사제들, 여성 주교들에 변화를 말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변화 세상의 변화에 근본주의가 사라지고 있다는것은 전적으로 상응 할수없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교리와 신학으로 이루어진 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는 그만큼 교리와 신학으로 점철되어 있다. 따라서 기독교는 매우 정교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구원이 다소 느슨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과 신학까지 느슨한 것은 아니다. 구원의전체적인 서정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우 정교한 교리적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런 내용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성은 물론 구원의 종합적인 내용들의 손상을 가져오지 않으며 모든 믿는 자들을 포괄하는 종합적 계획이며 실천들이다.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쉽게 말하지만그 구원을 전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창조부터 시작해 새 하늘과 새 땅까지 설명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는 성경을 표준으로 한 정교한 교리적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런 교리야 말로 기독교를 잡다하고 혼란스러운 세태 속에서 보존한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교회 교육의 필요에서 생긴 믿음의 조항이 교리 교육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이단 방지에도 쓰여졌다. 이 일은 교회사가 증명한다.기독교의 진리수호는 또하니의 희생이 동반되었던 사실은 은폐될수 없다.그런의미에서 교회는 지속적 갱신과 회복운동의 개혁적 사고가 발생하는것이 생명력있는 교회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진리와 사랑은 양립 할수는 없지만 진리의 말씀  가운데 있는 성도는 타인이라는 지옥을 사랑할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사나 죽으나  몸과 영혼이 모두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것으로 주님이 명령하신 네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인 첫계명 사랑을 할때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이다.

하비 콕스는 마지막 끝맺음을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다. 라는 주제로서 그리스도교를 뒤흔들어서 갱신시키는 대격변이 믿음의 조항 보다는 신앙이 그리스도를 규정하는 성질로서 초대교회 최초의 신앙으로서  어떻게 저 원래의 추진력이. 신조들과 성직계급제도와 교회와 제국의 불행한 합병으로 거의 질식하게 되었는지를 서술했다. 하나님의 기적이 불필요한 권력의 자리에는 화를 주시기를 주저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록 하나님은 진노할수고 있고 마음을 변경할 수도 있는 분이지만 그분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신 분이셨고 결국에는 정의롭고 강력한 분이셨고 지금도 하나님은 가난과 병든 삶에 희망의 끝에 애통하며,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를 찾아와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면 살수가 없는 사람에게 성령의 물,바람,불의 능력으로 인도하고 있으며 이들이 천국백성이 라는 것을 예수의 기적을 통해 가난한자 와 병든자를 부르고 시고 고쳐주시며 하늘나라를 선포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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